한국 전통 타악기 연주자이자 국악ㆍ재즈 작곡가 김지혜의 첫 정규 음반
‘파도’
한국 전통 타악기 연주자이자 국악ㆍ재즈 작곡가인 김지혜의 첫 정규 음반 ‘파도’는 새로운 꿈에 대한 도전과 성장, 그리고 용기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전통음악가로서 미국에 건너가 새로운 음악과 문화를 습득한 그의 음악 여정을 표현한 작품으로 파도, 항해, 해무를 포함한 8개 곡이 수록되어 있다. 김지혜의 음악 언어인 국악과 재즈를 융합한 이 음반에는 현재 국악과 재즈 각 씬(scene)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연주자들이 참여했다.
------------------------------------------------------------------------------------------
'공존을 내재한 이중문화자의 물음과 답'
‘바이-컬처럴’(bi-cultural)이라는 말이 있다. ‘이중문화’로 번역하며 한 사람 혹은 하나의 집단에, 두 가지 이상의 문화 중 어느 하나가 우세하지 않은 형태로 공존하는 상태를 설명한다. 이는 때때로 주체에게 정체성 혼란과 복잡성을 일으키지만, 반대로 이러한 감각이 온전하게 생동하는 한, 그로부터 제3의 가치와 가능성이 움트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파도]는 국악과 재즈의 바이-컬처럴리스트인 김지혜가 자신의 음악 정체성을 둘러싼 고민과 실험을 녹여낸 산물이다. 우리는 지난 대중음악사 적잖은 시간 속 국악과 재즈의 만남을 주선한 다양한 시도를 보았다. 주로 개별 정체성을 지닌 음악가들이 나름의 편성과 협업을 통해 두 영역의 완충 지대를 가꾸는 형태였다. 돋보이는 작품도 있었으나 막상 양편의 사람을 모으는 게 아이디어의 전부였던 경우도 허다하다. 전통 타악과 연희에 뿌리를 둔 김지혜는 이러한 접경 지대를 넓히는 데 다른 사람을 포섭하기에 앞서, 스스로 재즈에 뛰어들어 두 세계를 제 안에서 충돌시켰다. 작품의 마지막 곡 제목이자 핵심 소재이기도 한 ‘파도’는 음악 속 장단의 움직임을 형상화한 것이자, 전통음악가로서 미국에 건너가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습득한 김지혜 자신의 여정을 상징하면서도, 그의 내부에 격렬하게 인 물결을 연상하게도 한다.
김지혜의 음악과 여정이 최종 정답과 목적지를 상정하지 않아서일까? 그의 유학 시절 작곡한 곡(‘파도’)으로부터 출발했다는 이 앨범 역시 국악 창작이나 국악을 가미한 재즈 등 국내에 익숙한 기존 모범과 전형을 참조하지 않는다. 규칙이 없는 건 아니다. 다양한 국악 장단을 해체하지 않고 전통 그대로 이리저리 엮어 곡의 기초로 삼았고, 곡의 구성과 양식은 재즈를 따르는 뚜렷한 방법론을 바탕에 두고 있다. 욕심도 꽤 있다. 전통과 실험, 장단과 선율, 확장과 몰입, 쉴 때 쉬어가는 충분한 여백과 강렬한 난립. 어떤 미학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덕분에 국악과 재즈의 뉘앙스, 국악기와 양악기의 솔로가 사이좋게 제시되지만, 두 가지가 서로 분리되지 않으며, 각 수록곡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전달하는 묘사와 유려하면서도 몰입도 높은 서사, 진중함과 흥겨움 등 공존하기 쉽지 않은 매력과 가치를 양손에 움켜쥐기도 한다.
앨범에 함께한 동료 중 백다솜, 조갑동은 각기 개인 작업과 김지혜와 함께하는 일렉트레디션 등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어가는 국악 기반 음악가로서 김지혜의 뿌리와 태도를 잘 이해하는 이들이다. 정지수, 이수정은 김지혜와 유학 시절을 함께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 한국 재즈계에서 가장 돋보이는 젊은 연주자들이다. 특히 정지수는 어렸을 때 클래식을 연주하다 재즈로 전향한 피아니스트이자 앞서 김지혜와 듀오 ‘지혜지수’의 앨범(2021)을 발표하기도 한 또 한 명의 바이-컬처럴리스트다.
바이-컬처럴의 용례와 비슷하게 두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을 뜻하는 ‘바이-링구얼’(bi-lingual)은 때때로 제대로 된 모국어가 없는 ‘에이-링구얼’(a-lingual)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언어와 예술은 다르다. 언어는 복수 공동체의 의사소통을 주요 가치와 목표로 삼지만, 예술은 우리에게 규범의 유창성이라는 가치에 갇히라 강요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앨범에서 억지로 스윙을 찾아 헤집을 필요가 없으며, 국악이나 재즈 한편에 치우쳐 특정한 정체성을 정의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파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이며 존재 자체로 경계를 무화한다. 김지혜가 기존의 음악 경계를 직접 횡단하고 정체성을 교차하는 경험을 거쳐 나름의 공존 방식을 찾은 이 작품의 성취는, 아직도 우리 전통음악과 재즈가 나아갈 길에 질문할 것이 많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정병욱(대중음악평론가)
[Tracks]
1. 새로운 세상으로 (03:45)
2. 돛을 펴다 (08:23)
3. 항해 (08:18)
4. 해무 (06:36)
5. 폭풍우 (03:37)
6. 별빛 (07:14)
7. 다시, 새로운 세상으로 (05:33)
8. 파도 (06:34)
[Credits]
Producer⋅Director⋅Composer - 김지혜 Jihye Kim
Daegeum⋅Sogeum - 백다솜 Dasom Baek (except track 7)
Alto Saxophone - 이수정 Soojung Lee (except track 6 and 7)
Piano - 정지수 Jisu Jung (except track 7)
Contrabass - 전창민 Changmin Jun (except track 7)
Janggu - 김지혜 Jihye Kim
Traditional Korean Percussion⋅Taepyeongso - 조갑동 Gabdong Cho
Project Manager - 강미란 Miran Kang
Mixing⋅Mastering Engineer - 강진용 Jin Kang
Recording Engineer - 이병석 Byungseok Lee (Rêve Music Studio)
Artwork Designer - 이미림 Mirim Lee
Recorded at Rêve Music Studio, Seoul, South Korea, August 25, 2024.
Sponsored by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About Artists]
김지혜
한국 전통 장단에 뿌리를 둔 작곡가이자 타악 연주자인 김지혜는, 8살에 사물놀이를 처음 접한 후 음악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연주자와 연희자로 활동하며 음악 경험을 쌓다가 작곡에 대한 새로운 열망을 발견하게 되었고, 음악 역량을 키우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 재즈 작곡을 배우며 다양한 문화를 접하게 되었다. 김지혜는 이 과정에서 자신의 음악적 뿌리인 전통음악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는 전통의 정체성을 중시하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과 실험을 추구하는 그의 예술적 방향에 큰 영향을 미쳤다.
현재 김지혜는 전통음악과 재즈가 지닌 고유한 색채와 자유로움을 융합하거나, 전통연희와 전자음악을 결합해 새로운 형태의 작품을 창작하는 등 활발한 예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파도 by 김지혜 [CD]